부산 화단의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갈 시켜 줄 오아시스를 꿈꾸며「 부산 청년 미술상 」은 망망 대해를 향하여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나름대로 만만찮은 시련을 헤치며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돌이켜 볼 때 대외적인 기대에 부응치 못한 채 아직도 원점에서 맴돌고 있는 미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그 동안 무려 80여명의 중요 미술계 인사가 이 미술상에 관심을 갖고 행사에 참여해주신 것은 부산 화단에 잔잔한 활력을 생성시켰다고 여겨집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이 미술상은 유사한 모델이 없는 신선미가 장점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순점과 고쳐야 할 부분도 많음을 자성하고있습니다.

 

◇ 개선되어야 할 점 ◇

첫째, 이 미술상의 특성상 심의 위원들이 일년 내내 수상의 대상이 되는 전시회를 관람한 다는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둘째, 아직도 기금 마련이 되지 못한 채 그때 그때 주관 처의 호주머니에서 즉흥적(?)으로 경비가 지출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회에 걸쳐 훌륭한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그 동안 이 미술상의 심의에 참여해 주신분들의 노고의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그 동안 이 미술상에 관심을 가져 주신 언론계 문화 담당자의 후원에도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부산일보 박정인 전무님은 1회때부터 오늘까지 줄곧 애정을 갖고 지켜 봐주신 분 중에 한 분입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여 신선하고 투명한 미술상으로 지속시켜 보다 바람직한 상이 되게끔 계속 꿈을 가져 보고자 합니다.

공간화랑 대표 신 옥 진

 

◇부산 미술의 가능성과 기대속에서 ◇ (부산 청년 미술상의 20년)

89년에 출발한「부산 청년 미술상」이 시행 한지 벌써 2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난 20년간이란 우리의 정치·사회·경제면에서는 격동의 연속이었다. 정치적 민주화를 위시하여 문민, 역사바로세우기, 지방화, 세계화, 정보화, 외환금융사태 등
부산의 미술과 문화도 이러 한 시대의 상황과 흐름에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부산 청년 미술상」수상 작가들의 면면 을 살펴볼 때, 그러한 우리 시대의 표정과 상응하는 점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80년대 들어와 자각되기 시작한 부산 미술의 특징은 중앙 집권적인 문화 구도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자생적인 미술 운동의 효시로서 결실된 것이「부산 청년 비엔날레」가 될 것이며, 이 대열 에 참여했던 세대 가운데서 수상자로 나온 예유근(1회), 김응기(2회)가 있다는 것은 상징적 인 바 있다.

신표현 구상에 영향받아 서술적 형상성을 회복하고 우리의 삶과 체험을 은유 하여 그리고자 했던 일군의 무리를 대표하듯이 최석운(3회)도 있다. 그리고 예술 대학에 독 립된 조각과가 개설된 후 배출된 인재로 철조각에서 상징적 형상을 보였던 주명우(4회), 다 변화된 정보와 대중매체의 시대에 있어서 이야기와 대중성, 매체를 다루고자 했던 박은국(5 회), 장르 해체의 탈 경계 속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던 실치미술의 와중에서 투명한 의식과 원시적 정신성과 생명력으로 문명 비판의 의지를 구현해 낸 설치 미술의 박재현(6회), 유명 균(7회)이 있다는 점도 유별나다.

고조된 페미니즘의 기세 속에서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욕 망과 허위, 심리를 가감 없이 드러내려고 했던 양인진(6회), 자연 환경에 대한 관심과 생명 외경의 가치관에 상응하듯이 자연친화적인 소재와 매체에 의한 자연성의 체험을 환기하려고 했던 박미화(8회), 범람하는 상품화된 물질주의와 비인간화의 문명의 세태에서 드물게 강철 에 생명과 시정을 깃들게하여 비물질화하려는 박은생(9회), 사진의 인화법을 원용하여 개방 된 표현 매체에 따른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여 시각적 체험의 폭을 확대하고자 한 김성연 (10회)의 면모들은 부산 미술의 농축된 의지의 소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작가들 가 운데 수상자들을 통한 한정된 모습이겠지만, 그들이 지향한 가치와 신념들은 부산 미술의 가능성과 기대를 함께 호흡하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비록 수상자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후보가 되었던 그 많은 젊은 부산의 미술인 들에게서도 이와 동일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지난 20년이었음은 틀림없다.

초유의 경제위기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98년에 펼쳐 보였던 젊은 미술인 들의 작품 발표는 부산 미술의 잠재된 역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청년 미술상」을 태동시키고, 오랫동안 보살폈던 작고하신 이시우선생님(미술평론)과 먼 이국 땅에서 청운의 꿈도 채 이루지 못하고 젊은 생애로 마감한 수상자 주명우님(조각가)의 명복을 이 자리를 빌려 함께 기원하고자한다.

심의 위원장 옥 영 식

 

◇도전하는 10년의 무게로◇ 「부산 청년 미술상」 20년에 부쳐

우리가 생각하듯이 '시간의 흐름'속에서 한 기점의 의미는 단순히 한 시기가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 다시 나 자신을 찾으려는 것에 있다면, 중요한 시점은 '지금 현재'이다. 즉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서 현재인 것이다.

이제「부산 청년 미술상」도 20년이 되었다.

이 시간의 의미는 이전까지 작가의 등용문으 로 군림한 공모전의 양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열의 수용과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고자 하는 의지에 있는 것이다.

그 수용의 틀을 개인전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것은 곧 개인전 작품의 질의 문제로 귀결되어, 여기에 어느 정도 공신력 있는 기관의 검증이 필요하 게 되었다. 이러한 취지에서 탄생한 것이 「부산 청년 미술상」이다. 그리하여 「부산 청년 미술상」은 공모전의 양식화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창성을 발휘한 35세 미만의 젊은 작 가의 창작 의욕을 인정하는 일종의 작가 증서가 된 것이다. 그러나「부산 청년 미술상」은 매년 능력 있는 수상자가 나오면서도 한국 미술계뿐만 아 니라 지역사회에서도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않고, 작가 역시 수상 전이나 이후나 변한 것 이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여기에 「부산 청년 미술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은 다음의 개선점으로 모아진다.
1)지역 미술계의 관심과 동참 2)선정 방식과 심사 위원의 권위 3)수상 이후의 창작 지원이다.
물론 여기서 1)의 경우는 애당초 공간화랑 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근본 취지로 볼 때 부산 지역의 화랑뿐만 아니라 여러 메세나 그룹들의 참여가 요청된다.
다음으로 2)의 경우이다. 다음으로 2)의 경우이다. 하나의 상이 그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선정 방식과 심사위원의 권위는 중요한 변수이다. 특히 현재 실 시되고 있는 선정 방식. 즉 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기보다는 '그 작가의 한 작품'을 선정하 면 어떨까? 아울러 수상 기념전에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그 작품도 같이 전시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3)의 경우인데, 현재 공간화랑에서 행하고 있는 창작 지원 프로그램, 즉 전시회 개최나 작품 구입과 함께 정보화사회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인터넷의 사이버 갤러리이다. 여기에 분기별로 수상작가의 다양한 작품과 작품 해설을 곁들 인다면 작가에게는 더 이상의 창작 지원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상도 빛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부산 청년 미술상」을 빛내는 것은 작가 스스로에 있다. 왜냐하면 상을 받는다는 것은 과거라는 현재의 잘했음이 아니라 미래라는 현재에 더욱 잘할 것이라는 믿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에 「부산 청년 미술상」의 도전하는 10년의 무게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송 만 용 (미학)